남남대화 통해 합의된 대북정책 먼저 내놔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광복절 경축사에서 보다 진전된 대북 정책을 골자로 한 이른바 ‘담대한 구상’을 제시했다. 하지만, 북한이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이 구상이 현실화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스펜서 김 태평양세기연구소(PCI) 공동창립자가 한국내의 합의된 장기 대북정책 도출이 선결과제라는 내용의 기고를 보내왔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 지원 제안은 환영할만 그러나 북한은 5년 단임정부 정책 안 믿을 것 독일처럼 정권 초월해 일관성 있게 추진 필요 다음 정부들도 따르면 현대사의 큰 업적 될 것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이고 진정한 비핵화에 나선다면 북한 경제와 주민 생활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주겠다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이에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과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 경로를 열려는 한국 정부의 목표를 강력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론상으로 볼 때 ‘실질적이고 진정한 과정’과 ‘진지하고 지속적인 외교’를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평화적이고 상호 합의 가능한 북한 비핵화의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데, 그 수사적 표현들이 현실 속에선 어떤 의미를 지니고,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 땐 또 어떤 뜻이 되며, 나아가 윤 대통령의 계획 속에선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또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 계획을 달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줄까. 현실이란 명확하면서도 불편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우리는 어떻게든 ‘현실은 명확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하곤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편안한 현실을 ‘창조’한다. 현실과는 괴리돼 있지만, 한결 편안한 세계 말이다. 그런 세계에선 성공을 기약할 수 없다.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몇몇 명확한 현실을 살펴보자. 1. 북한은 독재국가다. 김정은은 39세다. 아마도 35년~40년간 독재자로 군림할 것이다. 2.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대통령은 5년 단임제다. 3.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대통령 임기는 4년이고, 재선해 최대 8년 간 집권할 수 있다. 4.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의 선거 패턴을 너무도 잘 안다. 역대 선거를 거치며 미국과 한국의 대북 정책이 급변하는 것을 지켜봤다. 조지 W. 부시(2000년 당선), 이명박(2007년), 박근혜(2012년), 도널드 트럼프(2016년), 문재인(2017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북한에겐 극적인 변화의 연속이었다. 여기에 올해 윤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새로 나왔다. 입장을 바꿔 본다면, 북한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는 처지 아니었을까. 김정은은 이미 4명의 한국 대통령, 3명의 미국 대통령을 겪어봤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담대한 구상’을 임기 5년 내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나. 또 다음 대통령들도 윤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따를 것이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나. 솔직하게 답해보자.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을 완성하려면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들이 윤 대통령과 같은 생각이어야 하며, 그에 근거해 천문학적 액수의 세금을 북한 경제에 투입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합의한 ‘실질적이고 진정한 비핵화 과정’의 개념 규정에도 동의해야 한다. 김정은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과연 김정은이 5년짜리 윤석열 정부를 믿고 향후 40년 간에 걸친 자신의 지배력을 뒤흔들 완전하고 비가역적 비핵화를 추진할까. 그렇게 쉽게 자신의 정권을 무장해제시키려 할까.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한국의 5개년 계획을 미국의 4년 선거 주기와 조율하는 문제까지 따지면 일은 더 어려워진다. 미국이 한국의 핵심 동맹이긴 하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그런 계획에 대해 수동적인 협력 파트너는 될 수 있어도, 적극적인 협조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윤 대통령의 대북 5개년 계획이 신뢰할 만한 40년 액션 플랜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나는 독일 재통일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폴커 뤼에(Volker Ruhe)와 지난 몇 년 간 여러 이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1989~92년 독일 보수정당인 기민당(Christian Democratic Union Party) 사무총장이었으며, 재통일 국면에서 헬무트 콜 총리의 핵심 자문역이었다. 나중엔 통일 독일의 초대 국방장관이 됐다. 우리는 독일 재통일이 분단국가인 한국에 주는 교훈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독일 통일의 열쇠가 초당적 ‘동방정책(Ostpolitik)’에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1969년에서 1990년에 이르기까지 서독은 동독을 상대로 하나의 일관된 정책을 폈다. 보수건 진보건, 서독 정치인들은 동방정책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었고, 어느 진영이 집권해도 일관되게 추진했다. 동독의 국민과 정부도 동방정책을 인지하고 있었다. 중요한 점은, 미국과 소련 역시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국제적, 국내적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갔을 때, 명확한 비전을 지닌 서독이 통일을 주도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뤼에는 본질적 화해나 통일을 위한 첫 걸음으로 반드시 남북대화가 선행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보았다. 그보다는 남남 대화가 먼저 이뤄져, 보수-진보 진영이 합의된 대북 정책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대통령이 바뀌어도 다음 정부가 합의된 정책을 일관성 있게 따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책의 일관성이 확보된다면, 북한은 한국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또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도 한국의 정책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뤼에가 말하기를, 상황이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만일 한국정부가 당장의 정치 상황에 휘둘려 임시방편적 대책을 찾으려 한다면, 때는 너무 늦을 것이다. 혼란만 야기하고 기회를 놓쳐버릴지 모른다. 윤 대통령이 북한을 상대로 ‘담대한’ 정책에 나서려는 자세를 보였다는 것은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북한은 이미 싸늘한 반응을 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안다. 윤 대통령이 내디뎌야 할 가장 담대한 발걸음은 따로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 지도자들과 진영이나 정파를 초월해 진지하고도 지속적인 대화를 함으로써, 근본적이고 합의된 대북정책을 도출해내는 일이다. 임기 말쯤엔 한국의 합의된 대북 정책을 북한과 전 세계에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지켜보자는 식으로 반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2027년 대선 후보들이 모두 그 정책을 따르겠다고 공약한다면, 윤 대통령은 한국사에 영원히 남을 중대한 업적을 이루게 될 것이다. 스펜서 H. 김 항공우주 제품 제조판매사인 CBOL Corp 대표. 태평양세기연구소(PCI) 공동창립자이자 미국 외교협회회원. 2006~08년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APEC 기업인자문위 미국대표로 활동. 2012~13년 하버드대 애쉬센터(Ash Center) 레지던트 펠로. 〈아래는 기사의 영문 버전입니다〉 ━ North Korea: Five Year Plans in a 40 Year World...are No Plans At All. How to Make a 40 Year Plan. President Yoon Suk-yeol has presented an “audacious” plan in which South Korea will “significantly improve North Korea’s economy and its people’s livelihoods in stages if the North ceases the development of its nuclear program and embarks on a genuine and substantive process for denuclearization.” A U.S. State Department spokesman said, “We strongly support the ROK’s aim to open a path for serious and sustained diplomacy with Pyongyang.” Theoretically it does seem certain that only a “genuine and substantive process” and “serious and sustained diplomacy” can eventually create the conditions for a peaceful and mutually agreeable North Korean denuclearization. But what do those terms mean in reality, in detail, in President Yoon’s plan? And will reality intervene to render them not achievable? Sometimes reality is obvious. But inconvenient. So we perform some mental gymnastics that allow us to claim it’s not obvious, and then we can create a world for ourselves that is more convenient. Not real, but more convenient. That kind of world rarely brings success. In the case of North Korean denuclearization, let us look at some obvious reality: North Korea is a dictatorship. Kim Jong Un is 39 years old. He will be dictator for probably 35 to 40 years. South Korea is a democracy. It has presidents that serve single five year terms. The United States is a democracy. It has presidents who serve four year terms; with the possibility of one re-election for another four years. Maximum for one president is eight years. Kim Jong Un knows very well the electoral patterns. In the past, elections have drastically changed US and South Korean proposals for dealing with North Korea. A quick review from the Pyongyang viewpoint shows a history of policies toward the North drastically changing following elections: George W. Bush in 2000; Lee Myung-bak in 2007; Park Geun-hye in 2012, Donald Trump in 2016; Moon Jae-in in 2017. And now, Yoon Suk-yeol in 2022. In all honesty, can we blame North Korea for feeling whipsawed? Kim Jong-un has already dealt with four South Korean presidents and three US presidents. Who believes President Yoon’s audacious plan can be completed in five years, i.e. during the administration of President Yoon? Please raise your hand. Who believes that President Yoon has confirmed that the presidents who follow him will agree to follow President Yoon’s plan? Please raise your hand. Does Kim Jong-un know that the fulfillment of President Yoon’s plan would take way more than five years to complete, require several of Yoon’s successors to agree to the plan, to the large expenditures of South Korean tax money on North Korea’s economy called for in the plan, and to any definition of a “genuine and substantive process for denuclearization” agreed to by the Yoon Administration? Yes, he does. Is Kim Jong-un going to take concrete, irreversible actions to denuclearize that will affect all 40 years of his expected reign, and, from his point of view, leave his regime disarmed, based on a five year plan introduced in 2022? Highly unlikely. And that does not even address the question of synchronizing a South Korean five year plan with the four year election cycle in the United States, the key South Korean ally that has to be at the very least a passive cooperating partner in any plan, and more likely a willing co-partner. But can a five year plan for engagement be made into a believable 40 year plan of action? Years ago I met Volker Rühe, one of the key players as Germany reunified. Rühe was the Secretary General of the conservative Christian Democratic Union party from 1989 to 1992, and a top advisor to Chancellor Helmut Kohl as German reunification unfolded. He was then the first defense minister of the united Germany. He and I had the chance to talk on several occasions over several years. Of course we discussed the issue of German reunification and the lessons for divided Korea. Rühe said the key to German unification was the bipartisan policy of Ostpolitik. From 1969 until 1990, West Germany followed one basic policy toward East Germany. West German politicians, liberal and conservative, knew what it was and both followed it as their policy guide when they were in power. East Germans, both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knew what it was. Importantly, the US and Soviet Union knew what it was. When international and domestic circumstances became propitious, German unification unfolded, guided by West Germans with a clear vision. Rühe said before North-South Korean fundamental rapprochement or unification could ever occur, North-South dialogue wasn’t the necessary first step. There first had to be a South-South dialogue that created a progressive-conservative commonly agreed policy toward the North that president after president would follow. So that the North would come to know what to expect from the South. So that China, the US, Japan, and Russia understood exactly what South Korea’s policy was. Only then, Rühe said, when circumstances presented themselves for breakthroughs, could progress be made. If Seoul tried to find an ad hoc solution in the political heat of whatever those international, regional and peninsular circumstances coming together were, it would be too late. Confusion would reign and opportunity would be lost. President Yoon should be lauded for being willing to launch an “audacious” policy toward the North. But let us be realistic. The North hasn’t responded well to the effort, and they won’t. And we know why. The really most audacious step President Yoon could make would be to organize a serious and sustained dialogue between all factions of South Korean politics, economics, and society to develop a fundamental, agreed policy toward the North. Toward the end of his term President Yoon could unveil that policy to Pyongyang and the world. Pyongyang will react with wait and see. But when all the South Korean presidential candidates in 2027 pledge to follow that policy, President Yoon will have achieved something that earns him a prominent place in Korean history forever. Spencer H. Kim is CEO of CBOL Corp., a California aerospace company. He is a co-founder of the Pacific Century Institute and a member of the US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He was appointed by President Bush to represent the US on the APEC Business Advisory Council 2006-08. He was a resident fellow at Harvard’s Ash Center for Democratic Governance and Innovation 2012-13.남남대화 대북정책 장기 대북정책 한국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